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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꿈을 꾸는 시간

    • 글. 이만교 소설가
  • 소설을 쓸 때, 비움과 채움의 시간은 한 문장 한 문장 새로 찾아 나가면서 교차한다. 긴장도가 매우 높다.
    하다못해 놀음에라도 바짝 몰입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몰입과 긴장에는 상당한 에너지가 소모된다. 꽤 수고스럽다.
나는 매일 조금씩이라도 쓴다

내게는 글을 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써지지 않아도 써보는 것이다. 억지로 써보는 것이다. 매일 한 단락이라도 써보는 것이다. 분명 쓰기 전에는 딱히 쓸 말이 없었는데, 쓰다 보면 쓰고 싶은 말이 생기곤 한다. 드물게는 ‘써보지 않았으면 어떡할 뻔했어!’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마음에 드는 이야기가 덩굴처럼 따라 올라오기도 한다.
둘째는 저절로 써지는 것이다. 문득 쓰고 싶은 말이 떠올라, 청탁이나 마감이 없어도 쓰게 되는 경우다. 흔히 “필이 왔다”, “영감이 떠올랐다”, “글감이 생겼다” 라고 말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첫째보다 둘째 경우가 더 행복하지만, 그러나 수차례 비교해 보았는데, 둘째 경우는 매우 드물고, 심지어 둘째 경우가 첫째 경우보다 더 나은 글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래서 나는 매일매일 조금씩이라도 써본다.
내게 글쓰기란 ‘더 나은 생각 문장을 찾는 것’이다. 내게 글을 써본다는 것은, 내가 해볼 수 있는 최선의 생각과 최상의 상상을 해보는 일이다. 발표는 그다음 문제다. 최선의 생각, 최상의 상상을 하지 못하더라도, 이러한 노력만으로, 나쁜 생각이나 상상을 하지 않도록 도와준다. 그래서 매일 조금씩이라도 써보는 걸 선호한다. 더 나은 생각, 더 나은 상상을 할라치면 마음은 바빠진다. 나는 그중에서도 글 쓸 때의 몰입도가 제일 강한 것 같다. 운전하다 보면 고속도로 운전조차 얼마간 습관적으로 수행할 수 있지만, 글쓰기는 언제나 한 문장 한 문장 새로 찾아 나가야 하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수행할 수가 없다.
뭔가에 바짝 —하다못해 놀음에라도— 몰입해 본 사람은 알지만, 몰입과 긴장에는 상당한 에너지가 소모된다. 꽤 수고스럽다.

충만의 느낌은 소유보다 몰입에서 온다

하지만 이 몰입과 긴장이 있어야 사는 맛이 난다. 몰입과 긴장에 맛을 들이면, 몰입과 긴장이 없는 하루는 시시하고 허망하다. 나는 매일 초저녁에 잠들어, 자정쯤 일어나 새벽 6시 무렵까지 읽거나 쓰는데, 그래서 내 정신은 매일 새벽 두세 시쯤이 가장 활달하다. 아마 이 시간대에 자기공명영상 촬영을 하면 게임 중독에 빠진 사람이나 놀음 중독에 빠진 사람처럼 나오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써보지 못했거나, 제대로 읽을거리를 찾지 못한 채 새벽을 맞는 날은, 도박판에 끼지 못한 도박꾼처럼 초조하다 못해 억울하다. 모르긴 몰라도 나처럼 이삼십 년째 글을 써온 작가들은, 게다가 글로 돈벌이를 해온 작가들은, 다 나와 같은 중독성 몰입감을 얼마간 즐기는 사람들일 거다.
몰입에 중독되는 습관이 제일 좋은 것 같다. 그냥 하는 거다. 결과는 그다음이다. 돈 좀 땄다고 놀음꾼이 그만두는가. 더 할 것이다. 게임 레벨 좀 업되었다고 게임 마니아가 게임을 그만두는가. 더 할 것이다.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살려고 노력해야 하지만, 노력이란 게 말처럼 쉽지 않다. 에너지가 무척 많이 들어서, 많은 사람이 결심만 하고 실천은 못 한다. 하지만 몰입 중독은 저절로 노력하게 해준다. 습관을 만들기까지가 힘들지, 습관이 들면 저절로 하게 된다. 중독은 습관보다 더 효과적이다. 하지 말라고 해도 한다. 좋아서 절로 한다. 체력만 허락한다면, 점점 더 강하게 한다.
그래서 나는,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만 않는다면— 뭔가에 중독돼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운동에, 게임에, 술에, 공부에, 일에, 연애에 중독돼 있는 사람은 옆에서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함께 행복하다.
충만의 느낌은 소유보다 몰입에서 온다. 소유에서 오는 충만도 좋긴 하지만, 몰입에서 오는 충만감은 늘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충일에 젖게 만든다. 어쩌면 소유를 좋아하는 사람들조차 소유할 때의 충만한 맛에 중독된 사람일 것이다.
글쓰기가 내게 가장 강한 몰입과 긴장을 준다면, 책읽기는 그다음의 강한 몰입과 긴장을 준다. 물론 모든 책이 그렇진 않다. 강렬하지 않은 책은 오히려 실망만 준다. 한 문장 한 문장 낯설고 새로운, 혹은 놀랍고 뜨거운 글이 좋다. 좋은 문장은 에너지와 같다. 그런 글을 만나면 감전되는 것처럼 내 정신도 팽팽하게 살아난다.
어쨌거나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자정부터 새벽까지 나 혼자 깨어 읽거나 쓰는 걸 나는 제일 좋아한다. 아마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으려다 보니 이 시간대에 읽고 쓰는 습관이 든 건지 모르겠다. 밤을 새운 나는 식구들이 일어나는 아침 시간에 잠자리에 든다.
아내는 밤을 새운 나를 보며 매우 큰 수고를 하고 잠드는 줄 알지만, 사실 아내와 나는 똑같은 일을 한 것이다. 아내도 밤새 꿈을 꾸었고, 나도 밤새 꿈을 꾼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