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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균형 있는 삶을 위한 비움과 채움

    • 글. 장윤미 문화평론가 — 사진제공. 셔터스톡(사진1), 이로재(사진3), 김현민(사진6)
  • 프로이트는 말했다. 인간에게는 두 가지 욕망이 있다고.
    삶의 욕망인 에로스와 죽음의 욕망인 타나토스. 먼저 삶을 욕망한다면 인간은 끊임없이 저장해야 한다. 생존하기 위해 음식을 저장해야 하고, 심장이 뛰기 위해 사랑을 저장해야 한다. 반대로 죽음을 욕망한다면 최대한 많이 비워야 한다. 곡기를 끊어 속을 비워야 하고, 관계를 정리해 마음을 비워야 한다.
눈 내리는 경복궁 사진 1. 옛 궁궐의 건축 형태는 주로 빛이 들도록 하는 비움과 눈과 비를 받아들이는 채움의 미학이 공존한다. 사진은 경복궁.
지속적인 기쁨을 주는 행위여야 한다

핵심은 저장이든 비움이든 어느 하나에만 집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쪽에 집중한다는 것은 곧 거기에만 과도하게 에너지를 쏟는다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열이 오르다 못해 활활 타버려 결과적으로 ‘번 아웃’ 될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어떤 것도 존재를 해치는 방법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채우는 것도 비우는 것도, 모두 나를 위해 필요한 행위다. 여기에 즐거움과 뿌듯함이라는 보상이 동반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테다. 그러려면 조건이 붙는다. 그 행위는 자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답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이 지속적인 기쁨을 주는 행위인지, 아니면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끌려 하는 일회적 행위는 아닌지. 안 하면 불안하다는 이유로, 또는 타인의 감시와 평가를 이유로, 그것도 아니면 남들은 다 하니까 나도 한번 해보겠다는 호기심으로 하는 건 아닌지 곱씹어 생각할 필요가 있다. 혹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다면 나를 가장 불편하고 불쾌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그게 곧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이유다.

완벽해지고 싶다는 욕망

일대일 경쟁에 나섰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경쟁자가 이른바 풀-세팅을 하고 등장해 주변의 시선을 강탈한다면, 실력은 둘째치고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걸 어쩔 수가 없다. 실력만 있으면 된다고 스스로 다독여 보지만, 한번 쪼그라든 의욕은 도대체 돌아올 줄을 모른다. 동력을 상실했으니 실패할 가능성도 당연히 크다. 이쯤 되면 내가 진 이유는 실력이 아니라 완벽하게 갖추지 못한 나의 처지 때문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실패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처음부터 완벽히 갖추고 시작하면 된다. 여기엔 너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승리자가 될 수 있다고, 되도록 빨리, 되도록 많이 아이템을 사서 풀-세팅하라고 부추기는 기업들이 있다. 기업의 역할은 소비자의 불안함을 자극해 물건을 사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들은 말한다. 당신에게 지금 필요한 건 바로 이 상품이라고, 이 상품이 당신을 빛나게 해줄 거라고, 사지 않으면 당신은 결국 질 거라며 불안을 자극한다.
저장하는 첫 번째 목적이 생존이라면 그것만큼이나 큰 목적은 과시와 성취감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타인으로부터 부러움을 얻고 싶고, 또 인정받고 싶다. 그러려면 실패하지 않아야 하고, 빈틈이 없어야 한다. 누가 공격해도 완벽하게 방어할 수 있을 만큼.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말 중 하나는 당신은 완벽하다는 칭찬, 능력자라는 칭찬이므로.
그런데 남들이 다 가지고 있는 보통의 장비만으로는 특별할 수 없다. 아니 뭐, 이런 것까지 필요하나 싶을 만큼의 섬세한 물건을 가지고 있을수록 진짜 전문가답다. 멀리서 보면 필요 없을 것 같은 물건도 몰라서 못 쓴 거지 꼭 필요한 아이템이라며 각종 ‘광고’를 통해 증명하는 데 넘어가지 않을 재간이 없다. 완벽해지고 싶다면, 독보적으로 되고 싶다면 고민할 필요가 없다. 장비발, (아이)템발이란 말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그런데 이 행동이 자신의 내부를 향하지 않고, 외부의 시선에만 닿아 있거나 맹목적인 경우엔 문제가 된다.
맥시멀리스트와 종종 함께 언급되는 부류 중에는 ‘호더’ 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최대한 많이 (자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물건을 모은다는 점에서 맥시멀리스트와 비슷하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다. 우선 호더는 물건에 대한 집착은 강하지만 그것을 쓸모 있게 분리하거나 저장하지 못한다. 상품이 가치를 잃지 않으려면 보관이 중요한데 호더는 모으는 것에만 집착할 뿐 보관하는 방법도, 쓸모에 따라 구분하고 저장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그렇다 보니 정작 필요할 때 찾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찾았다고 하더라도 상품의 가치가 떨어져서 쓸모가 없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가 추구해야 하는 것이 맹목적 호더가 아니라 ‘괜찮은’ 사람이라면 나에게 집중하자. 만약 내 앞에 쌓인 물건이 사라진다고 생각했을 때 설명할 수 없는 불안과 공포가 밀려온다면 마음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징후이자 증상일 가능성이 크다. 그건 나라는 존재 가치가 물건으로 옮겨 갔다는 의미고, 그 불안을 억압하기 위해 물건을 모아야 한다는 강박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채우는 것도 비우는 것도, 모두 나를 위해 필요한 행위다.
여기에 즐거움과 뿌듯함이라는 보상이 동반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테다.

북촌요가원 수련 사진
2. 무언가를 채우고 비우는 행위는 자기 내면을 들여다 볼 때 완성된다. 타인의 기준에서 볼 때 '완벽하다'는 칭찬은 맹목적으로 무언가를 취하거나 버리게 한다.
사진은 북촌요가원 수련 모습.
비움엔 용기가 필요하다

에너지보존법칙에 따르자면 내가 쓸 수 있는 에너지는 정해져 있고, 어느 한 곳에 나의 에너지를 쓰게 되면 다른 곳에 쓸 에너지는 부족하게 된다. 이 경우, 발생하는 문제 중 하나가 바로 번 아웃이다. 번 아웃은 한 가지 일에 지나치게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정신적 피로로 무기력증·자기혐오 등에 빠지는 증후군이다. 즉,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골고루 분배하지 못하는 데서 발생하는 증상이다.
다다익선이 미(美)이자 선(善)이라고 선언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착하고 좋은 사람이란 최대한 노력하고, 많이 모으고, 저장하는 사람이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남들이 부러워하는 멋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사고, 모으고, 저장하고 보니 생각보다 훨씬 지치고 힘이 든다. 게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상하고 변해 가치가 떨어지는 저 물건들을 보고 있자니 한심함도 밀려온다. 처분할까 싶은 생각이 들긴 하지만 들인 돈도 아깝고, 혹시나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쉽게 버릴 수도 없다. 하지만 상해서 버릴 때 느껴야 하는 찝찝함은 얼마나 불쾌한지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잘 알 것이다.
나를 증명하는 방법 중에서 가장 쉽고 편리한 방법은 내가 가진 도구로 나를 대신하는 것이었는데 대량 생산되면서, 같은 물건이 많아지면서, 게다가 물건의 값이 싸지면서 도구로 나를 증명하는 것이 예전만큼 쉽지 않게 되었다. 어지간히 좋은 물건이 아니고는 시선을 끌 수 없게 되었고, 더 치열해진 경쟁에서 이길 가능성은 점점 줄어든다는 생각에 더 불안해진다. 그러면서 나를 위해서 모은 것들이 어느 순간 오히려 나를 압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숨이 막혀 온다. 내 숨을 죄는 것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절박함이 밀려온다. 비움의 시기가 온 것이다.
사실 비움은 채우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불안은 과거의 경험과 미래의 무지에서 발생하는 위험 신호라면, 그리고 이 위험 신호를 감지하고 하는 행동이 저장과 채움이라면 불안은 분명히 긍정적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가 느끼는 불안의 대부분은 하지 않아도 되는 걱정과 고민 탓에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는 걸 안다면, 저장의 많은 부분 역시 필요 없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버리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과감하게 선택할 용기, 본전을 생각하지 않을 용기, 곱씹지 않을 용기.
그런데 살 때는 이유라도 있었지만 버릴 때는 쓸 곳이 없다는 핑계 말고는 딱히 없다. 이런 내 마음을 알고 있기라도 하듯이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곤도 마리에,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2016)라고 속삭인다. 설레는 마음의 기준은 오로지 내 마음에 달렸다. 논리도 이성도 필요 없다. 내 마음이 설레지 않으면 버릴 명분은 충분한 것이다. 뭐 곤도 마리에는 비우기 위해서는 내 물건을 사라는, 뭔가 모순적인 행동을 해서 공분을 사기도 했지만 수많은 사람에게 버릴 용기를 준 것만큼은 분명하다.
차마 용기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등장한 훌륭한 방법도 있다. 바로 ‘중나(중고나라)’, ‘당근(당근마켓)’과 같은 중고 거래 방식이다. 중고 거래는 선순환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버리는 데 돈을 쓰는 대신 돈을 벌 수 있는 건 물론, 나에게는 쓸모없는 물건이 누군가에는 꼭 필요한 물건이 될 수도 있다는 신선함은 덤이다. 게다가 차마 비싸서 사지 못했던 물건을 생각지도 못한 저렴한 비용으로 살 수 있어 기뻐하는 사람들을 보면 괜히 뿌듯해지면서 기분도 좋아진다.
비우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기 주변을 돌아봐야 한다. 오늘은 무엇을 또 비울까 고민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 가치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것도 유행을 타면서 ‘하루 하나씩 버리기 미션’이라든지 ‘비움 인증샷’ 같은, 보여주기식 비움만 넘치는 건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나의 최종 목적은 극단적 미니멀리스트가 아니라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가짐보다 쓰임이 더 중요하고, 더함보다는 나눔이 더 중요하며,
채움보다는 비움이 더 중요하다.”
건축가 승효상은 ‘빈자(貧者)의 미학’이란 철학으로
건축을 설계해 왔다.

하양 무학로 교회 건축물
3. 승효상 건축가의 대표적인 건축물, 하양 무학로 교회(2018)
비우고, 버릴 때 생각할 것들
  • ① 정리의 90%는 마인드다.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정리를 해놓아도 원상태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인생에서 한 번쯤은 진지하게 정리해 보자고 결심이 섰다면 시작해 보자.

  • ② 장소별이 아니라 물건별로 정리한다.

    똑같은 물건이 다른 방에 또 있다면 얼마나 가졌는지 파악할 수 없다.
    이런 일을 피하려면 같은 카테고리의 물건을 한꺼번에 모아 정리해야 한다.

  • ③ 가족의 물건을 마음대로 버려서는 안 된다.

    4세 이상이라면 어린아이라도 설렘을 기준으로 옷을 골라낼 수 있다.
    버릴 생각이 없다면 옷을 개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 세로로 수납하게 하면 된다.

  • ④ 올바른 순서로 정리한다.

    의류, 책, 서류, 소품, 추억의 물건 순으로 정리하라.
    남길 것과 버릴 것에 관한 판단도 빨라지고 다시 저저분해지지 않는다.

  • ⑤ 만졌을 때 설레는지 스스로 물어본다.

    버릴지 남길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만졌을 때 설레는가’이다.
    하나하나 만져 보면 물건에 따라 몸의 반응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중에서 ―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책 표지
4.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책 표지.
곤도 마리에 저, 더난출판사
당근마켓 광고 이미지
5. 중고 물품을 사고 파는 당근마켓
지속할 수 있다면 그것이 좋은 것

다른 나라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사회에서 맥시멀리스트니 미니멀리스트니 하는 건 자발적, 자의적이라기보다 유행의 흐름처럼 느껴진다. 따라 해야 하는 것, 따라 하지 않으면 촌스러운 것, 꼰대 같은 것. 한때는 맥시멀리스트가 온갖 영상을 장악하더니, 이제는 미니멀리스트들이 등장해 당신의 옷장과 주방을 비우라며 부추긴다. 완벽하게 준비된 자를 칭찬할 때는 언제고, 설레지 않는 물건을 두고도 버릴까 말까를 고민하는 사람을 딱하게 바라본다.
둘 중에 무엇을 선택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나에게 맞는 걸 찾아가는 게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삶을 양이나 개수로 평가하는 대신, 그 행위가 나에게 지속적인 행복과 의미를 주는지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행위가 지금 당장의 기분을 위로하는 것으로 그치는지, 아니면 오랫동안 행복을 주는 것인지 생각해 볼 것. 내게 불편을 주지 않는 삶이 가장 좋은 삶이다.

서촌의 한옥스테이 사진
6. 서울시 종로구 서촌의 한옥스테이, '일독일박'에서는 한옥에서 머무르며 책을 읽고 마음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