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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강 따라 흐르는

    백제의 서정시

    • 글. 김소연 프리랜서 에디터
    • ― 사진. 김현민(사진 1, 7~12), 국립공주박물관 제공(사진 2~6)
  • 천 리 길 금강의 반짝이는 물줄기가 굽이굽이 흐르는 땅.
    아름다운 계룡산 자락 아래 백제의 찬란한 문화를 보듬고 있는 곳.
    역사와 문화의 고리를 잇는 문화재를 돌아보며 여행의 감각을 일깨울 수 있는, 충청남도 공주를 찾았다.
1. 공주 공산성에서 바라본 금강
발굴 50주년,
세상 밖으로 나온 무령왕릉

1971년 7월, 충남 공주 송산리고분군에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 배수로 공사를 하는 도중에 발견된 벽돌무덤 하나, 그것은 백제의 역사는 물론 동아시아사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무령왕릉이었다. 이에 무령왕의 유산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전시하기 위해 1973년, 국립공주박물관이 새롭게 지어졌다.
당시 무령왕릉은 먼저 발견된 백제의 무덤과는 달리 도굴당하지 않은 완전한 상태로 발견되어 주목을 받았다. 백제의 무령왕 부부가 잠들어 있던 왕릉이 발견되어 발굴, 조사된 지 50주년을 맞아 새로운 반세기를 준비하며 국립공주박물관에서는 특별 전시를 열고 있다. 이 전시에는 기존의 상설 전시와 연계해 출토 유물 5,232점 전체를 공개하고 있다.
1971년 발견 이후 무령왕릉 출토 유물 전체를 한자리에서 공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에 더욱 소중한 기회다. 국보로 지정된 왕과 왕비의 부장품들을 새롭게 선보이고, 지금까지의 연구 과제를 중심으로 기획되어 웅진백제의 상징인 무령왕릉의 가치를 더한다.
백제의 웅장한 역사를 품은 공주에서 시간의 경계마저 허물어 버린 빛나는 문화를 만날 수 있다.

2. 무령왕과 왕비목관. 왕 목관은 255kg, 왕비 목관은 226kg에 달한다.
  • 3. 무덤을 지키고 죽은 사람의 영혼을 신선 세계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 진묘수 (국보 제162호)
  • 4. 왕비의 머리 부근에서 발견된 높이 15cm의 은잔
5, 6. 무령왕과 왕비 금제관식
잃어버린 구석기 문화를 되찾은 석장리 유적지

‘인간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구석기시대부터 지금까지 인간은 끝없는 진화 과정 속에 있다. 두 발로 걷고, 도구를 제작하고, 언어를 만들어 마침내 예술문화를 꽃피우기까지의 잃어버린 연결고리를 찾는 것이 구석기 고고학의 공통된 관심사이다.
석장리 유적은 12차례의 발굴을 통해 체계적으로 연구되어 왔다. 발굴 구덩이에는 번호가 매겨졌고, 유물이 발견되면 구덩이를 확장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한반도가 잃어버린 구석기 시대의 바탕이 된 곳으로, 여러 문화층이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지고 사라졌음을 밝혀준 곳이기도 하다. 강가를 중심으로 생활했던 선사시대의 인류 문화는 1964년 홍수에 의해 강둑이 무너지면서 발견되기 시작했다.
불모지와 같았던 우리의 구석기 문화를 되찾아 준 공주 석장리 유적. 이 땅에 켜켜이 쌓인 시간만큼 깊어진 역사의 나이테를 찾을 수 있는 곳이다.

7. 우리나라 최초의 구석기시대 주거지 모형이 발견된 석장리 유적지의 움집(막집)
8. 구석기인들의 다양한 사냥 도구
9. 구석기인의 생활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해 놓았다.
한국 최대의 순교자 기록, 황새바위 순교성지

“나는 솔직히 죽는 것을 몹시 무서워합니다. 그러나 나에게 죽는 것보다 몇천 배 더 무서워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나의 주님이시요,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저버리는 일입니다.”
3대째 천주교를 믿으며 순교자를 배출한 신앙의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란 ‘성인 손자선’의 고백이다. 관가에 찾아가 천주교 신자임을 스스로 밝힌 후 갖은 고문을 당했다. 배교하지 않겠다는 증표로 자신의 살점을 물어뜯어 보라는 관장의 요구에 양팔을 물어뜯어 피가 흐르게 했다는 토마스 손자선. 그 또한 바로 이 황새바위 순교성지에서 죽음을 맞이한 이들 중 한 명이다.
황새바위 순교성지는 참수 처형으로 대표되는 순교 성지이다. 금강과 제민천이 만나는 모래사장이었던 이곳은 공개 처형지로는 최적의 장소였다고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 이곳에서 희생된 숫자는 무려 337명으로 한국 최다의 순교자를 기록하고 있다.
신념과 생명을 바꿔보지 못한 자이기에, 성인들이 끝까지 지켜내고자 했던 신앙의 깊이를 가늠하기는 불가능하다. 다만 그 무언가를 향한 그토록 뜨거운 갈망과 열정을 가져보지 못했음을 부끄러워할 뿐이다.

10, 11. 황새바위 순교성지
역사가 말하는 존재, 공산성

1624년 이괄의 난을 피해 인조는 공산성에 머물고 있었다. 지금의 공주시 우성면에 살고 있던 임씨가 콩고물에 무친 떡을 진상했고, 시장한 참에 왕은 떡을 맛있게 먹었다. 왕이 떡의 이름을 물었지만 아는 이가 없었고, 다만 임씨 성을 가진 자가 올렸다는 말에 “임씨가 진상한 떡이 절미로다”라 하여 ‘임절미’가 되었다. 그것이 오늘날 인절미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바로 공산성의 쌍수정에서 비롯되었다.
공주의 옛 이름은 ‘고마나루’, 한자로는 ‘웅진熊津’이다. 백제의 도읍이었던 한성이 고구려에 의해 함락되면서 백제는 공주에 웅진성을 기반으로 새로운 부흥기를 열고자 했다. 마치 금강을 조망하기 위해 생겨난 듯한 공산公山은 급경사를 이루고 있기에 자연적인 요새의 역할도 함께 할 수 있었다. 왕이 살았던 왕궁지는 인절미의 유래가 된 쌍수정 앞쪽에 자리했다. 왕궁지에서는 공주 시가지는 물론 무령왕릉까지 한눈에 담긴다.

12. 삼국시대 포곡식으로 축조된 백제의 성곽, 공산성
고요로 마음을 씻다, 마곡사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마곡사는 고즈넉한 천년 고찰과 돌다리, 그리고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풍경 소리가 완벽한 조화를 이뤄낸다. 마곡사의 전각 중 대광보전에는 한 앉은뱅이 이야기가 전해 온다. 앉은뱅이의 삶을 거두고 걸을 수 있게 해달라고 매일같이 소원을 빌던 이가 있었다. 그러다 자신이 지은 억겁의 죄를 두고 일치감치 그렇게 큰 소원을 빌었다는 것에 커다란 부끄러움을 느끼고 깊은 참회의 시간을 보냈다.
걷지 못하는 것에 대한 원망과 슬픔보다 들꽃이 가진 생명의 가치와 살아 있음 자체에 소중함을 깨닫고, 그것만으로도 감사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100일이 채워지던 날 정성을 다해 절을 올리고 법당을 나오던 그는, 자신도 모르게 뚜벅뚜벅 걷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욕심을 내려놓고 더 가치 있는 것들에 감사하는 삶을 살기 시작하자 소원이 이루어졌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 이 아름다운 이야기에 마음이 끌리는 것은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동화 같은 기적이 필요하기 때문은 아닐까.의식하지 못한 채 걷고 있음을 알게 된 그는 세상을 감싸 안고 있는 거대한 선함을 깊이 있게 체험하게 된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을 향한 경이로움, 하늘과 숲이 부르는 바람의 노래를 만날 수 있는 마곡사.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갔던 공주에서, 마음을 가득 울리는 감사를 담아간다.

무령왕릉 발굴 50주년 특별전
무령왕릉 발굴 50년, 새로운 반세기를 준비하며’
2021.09.14.~ 2022.03.06
국립공주박물관(기획전시실&웅진백제실)
  • The Lyricism of the Baekje Kingdom Flows along the Geumgang River

    • Written by Kim Soyeon, freelance editor
    • Photographs by Kim Hyeonmin(photos 1–10)
  • Where the sparkling, winding waters of the near 400-kilometer-long Geumgang River run, a treasure trove shining with the glorious culture of the Baekje Kingdom sits at the foot of the magnificent Gyeryongsan Mountain. Awakening travelers’ senses through its displays of invaluable cultural assets that weave together history and culture, this is Gongju, a city in Chungcheongnam-do.
1. Geumgang River as seen from Gongsanseong Fortress in Gongju
The 50th anniversary of the excavation of King Muryeong’s tomb : The royal chamber in the sun

In July 1971, a miraculous discovery was reported from the Songsan-ri Tombs in Gongju, Chung-cheongnam-do: the royal tomb of King Muryeong had been unearthed during water drainage work. The brick chamber opened up a new chapter in the study of the history of the Baekje Kingdom as well as that of East Asia. To safely preserve and exhibit King Muryeong’s heritage, a branch of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was built in Gongju in 1973, later becoming Gongju National Museum in 1975.
Particularly noteworthy was the fact that King Muryeong’s tomb, unlike previously discovered Baek-je-era graves, was found intact without any signs of robbery. In celebration of the 50th anniversary of the excavation of the royal tomb, and in preparation for the next half century, Gongju National Museum presents a special exhibition of its entire collection of archae-ological findings—a total of 5,232 artifacts including those on show in its permanent exhibition hall. This is an unprecedented opportunity to appreciate the relics from King Muryeong’s tomb, as all the findings have not been available for public viewing since their dis-covery in 1971. Enhancing the value of the royal tomb, which was the symbol of the Baekje Kingdom during the Ungjin period, the exhibition is based on recent comprehensive research and newly unveils national treasures worn by the king and queen. This rare exhibit celebrates Gongju as the home of the splendid history of the Baekje Kingdom, providing an encounter with the kingdom’s glorious culture that transcends time.

2. King Muryeong and the queen’s wood coffins. The king’s coffin weighs 255 kilograms and the queen’s 226 kilograms.
  • 3. A nimal Figure for King Muryeong’s Tomb (National Treasure No. 162) served as the guardian of the tomb and a guide for the souls of the deceased to the world of shenxian (transcendental humans in Daoism).
  • 4. A 15 -centimeter-tall silver cup discovered near the queen’s head
5, 6. Gold crown ornaments from the tomb of King Muryeong
Uncovering Korea’s lost Paleolithic culture in the Seokjang-ri remains

What does it mean to be human? Since Paleolithic times and through today, humans have been undergoing the infinite process of evolution. Paleolithic archaeologists seek the lost links between the moments in history when human beings started to walk upright, make tools, create languages, and develop arts and culture.
The ancient remains at the Archaeological Site in Seokjang-ri have been systematically studied over a dozen excavations, during which each of the excavated sites were numbered and locations where relics were uncovered were expanded. The findings unearthed here revived the Old Stone Age, which was once lost on the Korean Peninsula, by proving how layers of culture had piled up and disappeared over a long period of time. The culture of a prehistoric riverside society began to be revealed when the bank of the Geumgang River collapsed in a flood in 1964.
At a time when signs of Paleolithic culture in Korea seemed to be almost non-existent, the Seokjang-ri remains revived this period of ancient history. Here, we can encounter the traces of history that, like the rings of a tree, grow wider as time goes on.

7. A straw-thatched hut at the Archeological Site in Seokjang-ri, where the first remains of Paleolithic residences in Korea were discovered
8. Various Paleolithic hunting tools
9. A vivid representation of the lifestyle of Paleolithic people
Hwangsaebawi Martyrium: The sacred site with the most martyrs in Korea

“I am very afraid to die, but I am 1,000 times more afraid to deny God, who is my lord and father.” These are the words that Thomas Son Chasuhn spoke when he was pushed to renounce his Catholic faith. The saint was born to a third-generation Catholic family that had included several martyrs before him, and after he voluntarily revealed that he was a Catholic, Son was cruelly tortured by government officials who even ordered him to bite his own arms to affirm his refusal to deny his credo. He would obey, bleeding. Son was one of the many Catholic martyrs who sacri-ficed themselves at Hwangsaebawi, where the faithful were executed by beheading. The notorious sandy beach, where the waters of the Geumgang River and Jemincheon Stream meet, is said to have been touted as the best place for public executions. As many as 337 people, the largest number of Catholic martyrs killed at a single site in Korea, were beheaded on the beach.
I have never thought about sacrificing my life for my beliefs, making the depth of the martyrs’ faith nearly impossible to fathom. Instead, I feel shame for my lack of such a deep longing and passion.

10, 11. Hwangsaebawi Martyrium
Remembering Gongsanseong Fortress in historical tales

In 1624, when Yi Gwal rebelled against the Joseon Dynasty’s King Injo, the king left Seoul to take refuge at Gongsanseong Fortress. One day, a man named Im living in what is now Useong-myeon, Gongju, offered rice cakes coated with bean powder to the hungry king, who enjoyed the dish. When the king asked around for the name of the rice cake, nobody could answer him, so he named it imjeolmi, which literally means “Im’s very tasty rice cake.” As time passed, it became injeolmi, the name by which we know it today. This story is commemorated at Ssangsujeong Pavilion, which was built in 1734 on the site where its events took place.
Long ago, Gongju was known by the name Gomanaru. Written as 熊津 in Chinese characters, the name came to be Ungjin as pronounced by Koreans. After losing its capital of Hanseong (mod-ern-day Seoul) to the Goguryeo Kingdom, the Baekje Kingdom moved to Gongju for its revival, settling on Gongsan Mountain, which seemed to have been created to overlook the Geumgang River and whose steep slopes formed a natural fortress. The remains of the palace where the king would reside are located in front of Ssangsujeong Pavilion. This royal resi-dence had a view of nearly all of Gongju, including the city center and King Muryeong’s tomb.

12. Gongsanseong Fortress, constructed by the Baekje in the valley-encircling style (pogoksik) during the Three Kingdoms period
Magoksa Temple: Clearing a cluttered mind with serenity

Magoksa Temple, a UNESCO World Heritage site, boasts the perfect harmony of a tranquil, time-honored Buddhist temple, a stone bridge, and the tinkling of windchimes. Among the several buildings that form Magoksa Temple, its main hall Daegwangbojeon is the subject of a story about a man who could not stand or walk. Though he prayed daily for the ability to walk, one day, he felt ashamed for having dared to make such a grand plea without doing anything about his sin, which had accumu-lated for an eternity. He decided to spend days in repentance, appreciating life and the value of all living things such as wildflowers, instead of feeling sorrowful and frustrated about his inability to walk. Every day, he visited the hall to bow earnestly, and on the 100th day, he realized that he was leaving the hall after finishing his bows by taking big steps. The message this tale may carry is that one’s wishes are realized only when one becomes free of greed and appreciates things for their true value. Today, people are still touched by this beautiful story—perhaps because they need such a miracle, too. As soon as the man sensed that he was walking unconsciously, he deeply understood the enormous goodness that shrouds the whole world. Magoksa Temple is a place where people can find awe in all living things and hear the song sung by the sky, wind, and forest. We go there in search of something invisible and come back filled with heartfelt appreciation.

Special Exhibition on the 50th Anniversary of the Excavation of King Muryeong’s Tomb
50 Years of Excavation: Preparing for a New Half Century of the Tomb of King Muryong
September 14, 2021–March 6, 2022
Gongju National Museum
(Special Exhibition Hall & Ungjin Baekje H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