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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온 마을을 축제로 만드는

    용인의 거북놀이

    • 글. 김정희 용인문화원 부설 용인학연구소 연구위원
    • ― 사진. 용인전통연희원
  • 음력 8월 한가위 보름달이 떠오르면 거북놀이 일행은 동네 입구에 거북을 모셔 놓은 단을 에워싸고 치성을 드린 다음, 거북 탈을 쓰고 길놀이할 채비를 한다. 길놀이를 하면서 마을의 우물 앞에 도착하면 질라쟁이의 신호에 맞춰 길놀이를 멈추고 우물 고사를 드린다. 예부터 장수의 상징인 거북과 함께 무병장수와 풍년을 기원하는 축제가 시작된다.
장수의 아이콘 거북과 함께, 거북놀이

거북놀이는 경기도와 충청도 일대에서 추석날 저녁에 하는 민속놀이로, 거북 모양을 만들어 집집마다 다니면서 무병장수와 안녕을 빌어 주고 음식을 대접받던 놀이다. 거북이 다녀간 집은 복이 온다고 하여 누구나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거북은 장생불사를 표상한 십장생 중 하나로, 바다 동물 가운데 가장 오래 살고, 병이 없는 동물로 알려져 있다. 거북놀이는 장수(長壽)의 아이콘인 거북처럼 마을 사람들의 무병장수를 빌며 각 집과 마을의 풍년을 기원하고, 마을의 잡귀를 쫓기 위해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거북놀이가 언제부터 연희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제강점기에 발간된 《조선의 향토오락》1)에 용인을 대표하는 놀이로 소개된 것으로 보아 조선 시대에는 널리 행해진 민속놀이로 추정된다. 하지만 명확한 기록이 없어서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고증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농사를 짓는 데 필수적인 비를 상징하는 거북을 통해 수확에 감사하고 다음 해 풍년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꽤 오래전부터 만들어진 놀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다.

1) 일제는 식민 정책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민속 조사를 실시하고 우리의 민속신앙을 미신으로 몰아세웠다. 이러한 목적하에 조선총독부 촉탁으로 조선의 민간신앙 연구에 종사한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에 의해 정리된 조선의 향토 오락 조사 자료. 1936년 발간
1. 동천동 은행나무 민속놀이 한마당에서 거북놀이를 재현하는 전통연희원
질라쟁이와 한바탕 춤판을 벌이자!

거북놀이는 경기도 평택·용인·이천·여주와 충청도의 예산·천안·음성 등 한강 남쪽 내륙 지방에서 행해지는 놀이로 알려져 있다.
거북놀이는 질라쟁이(마부), 거북, 잽이, 광대와 관객(구경꾼)으로 구성된다. 거북놀이를 행하기 약 일주일 전부터 마당이 넓은 집 사랑방에 모여 수숫잎을 따다 엮어서 거북 탈과 질라쟁이가 입을 옷을 준비한다. 질라쟁이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수숫잎을 엮어서 뒤집어쓰고 수수비를 들고서는 거북을 몰고 다닌다. 거북의 몸통은 수숫잎을 마대에 꽂아서 만들며 짚으로 용마름을 틀어 등의 무늬를 만들고, 수숫대를 묶어 만든 배에 꼬리를 단다. 그 안에 3~4명이 들어가게 되는데, 앞에 있는 사람은 머리 역할을 맡고 중간에 있는 사람은 몸의 움직임을 표현하며, 맨 뒤에 사람이 꼬리를 맡는다. 잽이는 상쇠, 부쇠, 징, 북, 장고 등 8명의 잽이로 이루어지며 광대와 관객들인 구경꾼도 필요하다.2)
음력 8월 한가위 보름달이 떠오르면 거북놀이 일행은 동네 입구에 거북을 모셔 놓은 단을 에워싸고 치성을 드린 다음, 거북 탈을 쓰고 길놀이할 채비를 한다. 길놀이를 하면서 마을의 우물 앞에 도착하면 질라쟁이의 신호에 맞춰 길놀이를 멈추고 우물 고사를 드린다. “7년 가뭄에도 맑은 물이 철철 흐르고 9년 장마 홍수에도 깨끗한 물 나게 하사, 이 물을 먹는 만인간 수명장수 발원이요.”라는 고사담이 끝나면 가락에 맞추어 세 번 절한 다음, 마을 입구에서 가까운 순서로 정해진 집을 향해 떠난다. 정해진 집 대문 앞에 도착한 일행은 “주인, 주인, 문 여시오! 수명장수 들어갑니다.” 하고 장단에 맞추어 문 안으로 들어가면 집주인이 나와 일행을 맞이한다. “여보시오, 주인. 이 거북이 압록강을 건너 여기 용인 땅까지 와서 용궁으로 가는 중에 들피져서 쓰러졌으니 먹을 것을 좀 주시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수숫잎을 뒤집어쓴 질라쟁이가 수수비를 들고 큰소리로 이렇게 외치면 집주인은 술과 음식을 내놓아 대접한다. 질라쟁이가 거북에게 술을 한잔 부어주며 “거북아, 이제 먹을 것이 나왔으니 한바탕 놀고 가자!”라고 소리치면 쓰러져 있던 거북이 일어나 부엌으로 들어간다. 거북이 “누르세. 누르세. 조왕지신을 누르세.”라고 외치면 일행이 전부 따라 들어와 부엌 바닥을 꼭꼭 밟은 다음 뒷마당의 터줏가리로 간다. 일행은 터줏가리를 맴돌며 “누르세. 누르세. 터주지신을 누르세.”를 외치며 땅을 꼭꼭 밟는데, 이러한 이유는 집안의 모든 잡귀를 밟아서 나오지 못하도록 하고 초복을 위한 방법으로 풀이된다. 개인 우물이 있는 집은 우물에 가서 “뚫어라. 뚫어라. 샘구멍 뚫어라.”를 외치며 생명의 근원이고, 일상생활의 근간인 물이 마르지 않기를 빌었다. 다시 마당으로 나온 일행은 대청의 상 위에 차려진 음식을 보고 절한 후, 고사 창을 부르면서 한바탕 춤판을 벌인다. 신명이 난 구성원들에 의해 대청마루가 부서진 때도 있었다고 한다. 춤판이 끝나면 질라쟁이는 집주인에게 덕담과 함께 무병장수를 빌어 주고, 다음 집으로 이동한다. 한 집에서 20~30분 정도의 시간이 걸렸는데, 30~40여 호의 집을 방문하다 보면 거북놀이는 밤이 늦도록 끝나지 않았다.

2) 하주성.1987년. 《내고장 민속》 19~20쪽.
2. 용인민속예술제에 참가한 용인전통연희원의 거북놀이
체험과 참여로 탈바꿈 중인 거북놀이

거북놀이가 추석에 행해졌다는 점은 줄다리기 같은 승패 놀이보다는 지신밟기처럼 집집마다 다니며 축원을 해주는 연희적 속성이 강한 놀이임을 알게 한다. 이 민속놀이는 주로 아이나 청소년들이 주체가 되어 음식을 대접받고 덕담과 복을 빌어 주는 작은 마을 축제였다.
거북놀이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사라져 갔다. 현재는 경기도 이천이나 여주, 충남 천안과 당진, 충북 음성 등에서 거북놀이를 보존하고자 하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으며, 규모가 갖춰진 오늘날과 같은 어른들의 놀이로 변화하는 과정을 겪었다. 거북놀이의 주도층이 어린이들로부터 어른들로 이전되는 과정에서 판굿과 농악이 개입되었는데, 이런 변화 과정은 민속경연대회나 민속예술축제 등에 출품하려는 시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어린이가 주동이 된 거북놀이의 경우에는 놀이의 형식이 없었지만, 이들과 결합하면서 제의와 판굿의 연희 방식을 갖추게 된 것이다. 현재의 거북놀이는 대개 이런 틀로 고정화되는 과정을 겪고 있다. 특히 연희의 변화 양상이 지역 민속문화의 특징을 알릴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 참여 방식으로 탈바꿈하고 있음은 주목할 만하다. 단순히 연희되는 것뿐만 아니라 거북이 만들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활용하려는 시도를 보여 주고 있는데, 전통 민속놀이의 계승·발전에 유의미한 면이라고 하겠다.
20~30년 전만 해도 용인 곳곳에서 펼쳐졌을 민속놀이가 급격한 산업 발전과 함께 사라졌다. 그러나 현재 용인시 민속놀이보전회와 용인전통연희원이 뜻을 모아 사라진 용인 지역의 민속놀이를 찾아 고증을 통해 재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용인의 거북놀이도 이러한 고증을 통해 동천동이나 동백동의 마을 축제에서 선보이고 있다.

3, 4. 거북 탈을 직접제작하는 모습
5. 동천동 은행나무 민속놀이 한마당에서 거북놀이를 재현하는 전통연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