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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협동과
    조화의 산물

    동서양의
    현악기

    • 글. 김효진 마르코폴로출판사 대표
    • ― 사진. 문화재청 국가유산포털 (사진 1), 셔터스톡 (사진 2), 필자 제공 (사진 3), 공유마당 (사진 4), 이수원 사진작가(사진 5)
  • 동서양을 막론하고 현악기는 많은 사랑을 받아 왔다. 타악기가 뭔가 원초적인 느낌을 강하게 주는 데 반해, 현악기는 좀 더 문명의 산물처럼 느껴진다. 그것이 어떤 종류의 악기이건 간에 현악기는 조율이라는 단계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1. 명주실을 꼬아 만든 여섯 개의 줄을 ‘술대’로 치거나 뜯어 연주하는 거문고
문화 발전과 긴밀하게 연결된 현악기

현악기는 현을 팽팽히 조여주거나 조금 느슨하게 만들어 줌으로써 음의 공명과 피치가 달라지는 결과를 만든다. 만돌린, 기타, 바이올린, 첼로, 비올라, 하프, 시타르, 비파, 거문고, 가야금, 아쟁, 대금 등 동양과 서양의 현악기는 이 조율의 단계 없이는 존재할 수가 없다. 바로 이러한 점으로 인해 현악기는 문화의 발전과 긴밀한 관계에 있다. 요컨대 타악기는 원시적인 문명에서도 나타날 수 있지만, 구조적으로 복잡한 현악기는 문명이 어느 정도 고양된 다음에나 가능하다. 그리고 대표적인 서양 현악기인 바이올린이나 비올라 또는 첼로 같은 경우에도 오케스트라처럼 여럿이서 함께 연주함으로써 협동 정신을 기를 수 있다.
음악은 동양과 서양 모두 종교에서 시작되었다. 음악만큼 사람들의 마음을 단시간에 움직이게 하는 매체는 없기 때문이다. 서양의 경우 중세를 지나 바로크 시대까지도 교회 안에 머물러 있었다. 베토벤 시대에 들어와서야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당연히 사람들은 음향의 세기에 주목했다. 왜냐하면 교회의 예배당이나 귀족의 거실을 벗어나 더 넓은 공간에서 음악이 연주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럴 때 현악기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모두에게 증명했다. 그것은 바로 사운드의 크기이다. 국가적 행사로서 음악이 발전한 것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공통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음향의 크기를 세세하게 다룰 수 있고, 또한 다양한 악기의 조합을 통해 사운드를 발전시킬 수 있는 특성 때문에 현악기는 더욱 각광받았다.

2. 서양의 대표적인 현악기인 바이올린
“아니, 양의 창자가 사람을 홀리게 하다니?” (셰익스피어, <헛소동>)

서양음악은 19세기에 들어와 공공의 영역으로 왕이라는 말로 바이올린을 표현하고 있는데 이 악기는 르네상스 시기를 거치면서 탄생했고, 바로크 시대에는 당대를 대표하는 악기로 떠올랐다. 바이올린은 그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탈리아에서 탄생했는데, 탄현악기인 기타에 비해 활로 현을 비벼서 소리를 만들어 낸다. 이른바 칠현악기에 속한다. 바이올린이 나오기 전의 현악기는 사운드가 멀리 퍼져 나가지 못했는데, 바이올린이 이 모든 문제를 해결했다. 바야흐로 바이올린이 모든 것을 주도하는 현악기가 된 것이다. 새로운 시대의 청중은 새로운 음악을 했고 바로 이 작지만 알차고 소리가 쭉 뻗어나가는 바이올린이 많은 이의 영혼을 사로잡았다. 몬테베르디 같은 작곡가가 그의 작품을 연주할 때 이 신묘한 악기를 사용하도록 요구한 것은 단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바람이었던 것이다.
바이올린의 몸통은 가문비나무나 단풍나무로 만들었고, 활대와 활털은 브라질에서 수입한 페르남부쿠 나무와 말의 꼬리털로 만들었다. 바이올린의 현은 서두에 인용했듯이 양의 창자를 말린 다음, 여러 가닥을 꼬아서 만들었다. 물론 지금은 이런 식으로 현을 만들지 않고 주로 금속으로 된 현을 사용하고 있다.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는 악기의 몸통 끝부분을 왼쪽 턱 밑에 고정하고 왼쪽 팔을 들어 악기의 얇은 목 부분을 잡는다. 오른손으로는 활을 잡아서 악기 위의 4현을 빠르게 운궁하면서 음향을 발생시킨다. 비올라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다만 바이올린보다 악기가 살짝 크고 살짝 낮은 음역을 담당할 뿐이다. 여기에 첼로의 경우도 상당히 비슷한데 이 악기는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바이올린처럼 어깨 위에 올려놓고 연주할 수가 없다. 무릎 사이에 악기를 놓고 연주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악기의 크기 자체가 크다.
우리가 보통 바이올린 두 대와 비올라 한 대 그리고 첼로 한 대로 구성된 음악을 현악 사중주라고 한다. 이 중 제1바이올리니스트가 음악의 템포와 리듬 그리고 강세 등을 결정하고 이끌어 가는데, 한국의 사물놀이도 원리는 비슷하다. 제1바이올리니스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상쇠이고, 제2바이올리니스트 역할을 하는 것이 부쇠이다. 사물놀이는 20세기 후반에 들어와 비로소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김덕수를 비롯한 최초의 사물놀이 멤버들은 서양의 현악 사중주단을 참고했다. 사물놀이는 장르나 음악의 형태가 아니라 사물놀이라는 팀의 이름이었다.

3. 얀 리번스, ‘바이올린 연주자’(1625)
4. 선비가 비파를 연주하는 장면을 그린 김홍도의 ‘포의풍류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랑받은 현악기는 ‘비파’

우리나라에도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가야금이나 거문고를 비롯한 여러 현악기가 있다. 그리고 모든 것이 그러하듯이 악기도 유행을 타면서 주목을 받거나 사라지기도 한다. 사실 문화처럼 유행에 민감한 것도 없다. 비파의 경우 지금은 한국에서 아무도 이 악기를 연주하지 않지만, 삼국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지속적으로 사랑받은 현악기다. 《삼국사기》에서 김부식(金富軾)은 “본래 북쪽 오랑캐들이 말 위에서 연주하던 현악기인데, 손을 밖으로 밀어서 소리 내는 것을 비(琵)라고 했고, 안으로 끌어들여서 소리 내는 것을 파琶라고 했다.”라고 설명하는데 《고려사》에도 이 악기가 등장하며 조선 시대에 출판된 《악학궤범》에서도 비파를 찾아볼 수 있다.
그만큼 천 년 이상 동안 비파만큼 한반도에서 사랑받은 현악기도 드물 것이다. 가야금이나 거문고 정도만이 비파의 인기를 위협할 정도이며, 다른 현악기들은 비교 자체가 어려울 정도로 비파의 인기에 가려져 있다. 18세기 말, 50대의 김홍도가 그린 <포의풍류도(布衣風流圖)>에도 선비가 비파를 연주하는 장면이 눈에 띈다. 사대부 가문의 지체 있는 선비조차 비파를 일상적으로 가까이 둔 채 연주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인식되어 있다는 점은 우리 시대의 관객에게는 좀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그림은 현재 삼성 리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5. 가야금 연주가 윤혜진의 연주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