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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세기 상형문자, 이모지

    • 글. 김지윤 브랜드 디자이너
    • 사진제공. 셔터스톡 셔터스톡(사진1, 2), 김지윤(사진3, 4)
  • 구글에 따르면 전 세계 인터넷 사용 인구의 90%가 이모지를 사용한다. 하트, 웃는 얼굴부터 동물, 음식, 건물뿐만 아니라 마법사, 좀비, 인어까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대부분의 개념이 이모지로 존재한다. 현재 공식적으로 등록된 이모지는 3,633개에 달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이모지가 제작되고 있다.
텍스트, 그 이상을 담기 위해

다양한 디지털 기기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은 텍스트다. 디지털 텍스트에서 표정을 드러내기 위한 시도는 꾸준히 이어져 왔다. 네^0^, 네:-), 네 ㅠㅠ 처럼 같은 말이어도 붙이는 이모티콘에 따라 모두 다른 대답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우리가 실제로 대화하는 것과 같은 감정과 느낌을 표현하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인간은 복합적인 감정을 더 잘 표현하기 위해서, 그리고 경제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이모지’라는 형태에 도달하게 되었다.
만국 공통어인 ‘이모지’는 현존하는 언어 중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언어다. 손을 모은 이모지를 붙여서 위트와 약간의 정성을 표현하기도 하고, 체크나 손가락 이모지 등을 구분자로 사용하기도 하며, 단지 이목을 끌기 위해 마케팅 메시지에 이모지를 덕지덕지 붙이기도 한다.

이모지의 경제성

동굴벽화나 쐐기문자, 중국 문자 등 실제 사물을 본뜬 그림문자, 상형문자는 인류 최초의 문자였다. 새로운 개념을 매번 그림으로 표현해야 하다 보니 경제적이지 않았고, 추상적 개념을 표현하기 어렵다 보니 점차 표음문자로 변화했다. 하지만 인간은 기술의 발전으로 다시 문자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시대로 돌아가고 있다. 이모지는 Emotion과는 전혀 상관없고, 그림을 뜻하는 회絵와 문자文字의 합성어인데, 이름 뜻 그대로 ‘상형문자’다. 최초의 문자와 현대의 문자가 만나는 이 순간이 참 역설적이다.
2015년 옥스포드 영어사전에서 선정한 올해의 단어는 글자가 아니라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얼굴’을 의미하는 이모지였고, 글로벌 랭귀지 모니터에 따르면 2014년 가장 인기 있는 단어는 글자가 아니라 하트 이모지였다. 이제 텍스트 기반 문화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은 글자가 아니라 이모지다.

인간은 기술의 발전으로 다시 문자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시대로 돌아가고 있다.
이모지는 Emotion과는 전혀 상관없고,
그림을 뜻하는 회(絵)와 문자(文字)의 합성어인데, 이름 뜻 그대로 ‘상형문자’다.

문화를 반영하는 이모지

2016년만 해도 여자 경찰, 남자 신부, 머리 다듬는 남자, 여자 탐정, 여자 노동자가 없었다. 이모지 또한 성 편향적으로 제작돼 온 것이다. 구글은 성평등을 위해 유니코드 이모지 위원회에 새로운 이모지 세트를 제안했고 여성, 남성 둘 다 존재하는 직업 이모지를 발표했다. 이후 2019년엔 애플이 성소수자 인권을 위해 젠더 뉴트럴Gender Neutral 이모지를 제안했고, 우리는 현재 같은 이모지여도 세 가지 버전의 이모지를 볼 수 있게 되었다.
2012년엔 이성애 커플 외에 동성애 커플 이모지가 등장했고, 2015년부터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표현하기 위해 다섯 가지 피부색이 추가되었다. 올해 트위터는 장애인을 위한 이모지를 제작하기에 앞서 사용자의 의견을 모으기도 했다. 성과 장애, 인종을 평등하게 표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다양한 이모지가 생겨나고,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이모지는 문화를 반영하는 문자이기도 하지만, 역으로 인류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알 수 있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코로나로 인해 바이러스, 주사기 이모지가 급격하게 많이 사용되었다. 2022년에는 K-팝의 영향으로 한국의 손가락 하트가 새로운 이모지로 추가된다고 한다. 이처럼 자주 사용되는 이모지와 새로 추가되는 이모지가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지금 무엇이 화두인지 알 수 있다.

2. 2015 옥스퍼드 영어사전에서 선정한 올해의 단어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얼굴”을 의미하는 이모지
이모지의 시작

이모지의 근원은 이모티콘이다. 이모티콘은 활자 조합으로 형태를 나타내는 것을 의미하며, 이미지 자체가 문자로 취급되는 이모지와는 다르다. 세상이 디지털화될 무렵인 1970년대, 이메일이라는 것이 등장했고, 화면의 글자로 어조와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1980년대엔 컴퓨터 사용자들이 기존 문자에서 얼굴을 만들기 위해 이모티콘을 작성하기 시작했는데, 1982년 카네기멜런 대학교의 전산학자인 스콧 펠만이 최초로 이모티콘을 제안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때 그가 문장 끝에 붙인 것이 웃는 얼굴 :-) 이었다.

3. 최초로 이모티콘을 제안한 스콧 펠만 4. 다양한 문화를 반영하는 이모지의 진화
언어로서의 이모지

이모지도 언어다 보니 사용자들이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무궁무진하게 이모지를 활용하는데, 이모지끼리 조합해 소설을 만든다거나, 이모지들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이모지를 합성해 새로운 개념을 창조하기도 한다. 지구상에 이렇게 함께 만들어 나가는 언어는 이모지가 유일할 것이다. 언어이기 때문에 디자인보다 중요한 것이 보편성이다. 많은 사람이 새 이모지를 보고 ‘새’라고 인지하려면 다른 기업들의 새는 어떻게 생겼는지,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새를 어떤 형태로 떠올리는지, 그것이 :bird:라는 이모지 명칭과 맞는 것인지 등 기호학적으로도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이모지 제작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말끝에 ㅋㅋㅋㅋ, ㅎㅎㅎㅎ가 없으면 왠지 심심한 메시지, 이모지를 달지 않으면 왠지 삭막해 보이는 문자, 의성어 의태어가 범람하거나 띄어쓰기와 어법이 맞지 않아도 소통되는 구조 등 오늘날의 텍스트 소통은 글쓰기보다는 일반적인 대화에 가깝다. 온라인으로 소통하는 상황이 폭발적으로 많아진 지금, 사회에서 이모지는 인간의 미묘한 억양과 감정을 담아 내고, 표현을 강화하는 수단이 된다. 디지털 환경에서 소통해도 우리가 휴머니즘과 위트를 가질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모지는 인간의 인지와 행동을 바꾼 강력한 매체이며, 인간이 소통하는 방식 자체를 바꾼 사례라고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