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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장과 함께 살아온 나날

    • 글과 사진. 이재인 한국문인인장박물관장
  • 한국문인인장박물관은 2000년에 개관한 국내 유일의 도장 테마 박물관이다. 문인들이 자신의 책을 발행한 뒤, 그 책 뒤에 낙관처럼 사용했던 인장들을 모아 전시한 이색 전시 공간이라 할 수 있다.
1. 한국문인인장박물관 인장 2. 한국문인인장박물관 전경
특화된 작은 박물관,
한국문인인장박물관

소년 시절, 나는 문학에 관심이 많았고 소설가 오영수의 제자가 되었다. 그때 스승님께 흥선대원군의 인장을 물려받은 것을 인연으로 지금까지 인장을 수집하였고 박물관을 짓기에 이르렀다. ‘악어새’를 집필하는 등 작가였던 까닭에 문인들로부터 인장을 얻기가 수월했다. 지금도 애지중지 여기는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인장부터 한국 근현대 문학사를 대표하는 문인들인 박목월, 조지훈, 염상섭, 현진건, 김유정, 이상, 서정주, 김동리, 박두진 등의 도장 등 그 수가 이미 1,000여 과를 넘었다.
이렇게 모은 인장 대부분은 ‘거저 얻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덴마크 국왕실의 문장은 구구절절 편지를 써서 보내 얻었다. 그러한 이유로 박물관의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문인들이 오면 그 문인들의 인장 또는 물품을 입장료 대신 받기도 한다. 최근에는 이름이 새겨진 인장뿐만 아니라 문인들의 얼굴이 새겨진 인장, 문학·문인들과 관련된 소품, 조각품 등도 전시하고 문학인 축제, 각종 체험 활동, 문학 행사도 진행하고 있다.

인장의 소재들

고려 시대 고급 인장들은 주로 청동으로 제작되었다. 간혹 도자인도 있기는 하나 그리 흔하지는 않다. 도자인은 청자인으로서, 귀족이나 호족들이 제작해 사용했다. 도자인은 글자, 즉 자형이 목조각처럼 살아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조선 시대 말기에 이르러서는 떡살을 백자로 구워 사용하였다. 민속박물관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다. 이 또한 문양이나 대소 자형이 예술적으로 되살아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그래도 연적 옆이나 밑변에 낙관을 새겨 찍었던 모습들은 인장 박물관에 전시, 보존되어 있다.
고려 이전에도 인장이 쓰였다는 기록이 있다. 단군 신화에도 천부인이 거론되었고 성경에도 인장을 찍었다는 내용이 있고 반지인까지 등장하며 인장의 기원을 밝혀 준다.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 그러려면 신고서에 신고인의 인장을 찍어야 한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어도 지원자의 인장, 보호자의 인장이 필수였다. 그리고 학생이 입학하면 우편저축 통장을 개설했다. 그러려면 면 소재지 옆 대서소에 위치한 도장방을 찾게 되는 고졸한 모습이 옛 풍경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중학교 진학, 고등학교 진학, 고등학교에서 대학으로 가려면 원서를 제출하게 되어있어 반드시 막도장이라도 있어야 했던 지난날이 있었다.
필자의 집에도 뒤주 위 도장 보관통에 몇 개의 막도장이 옛 사연을 머금고 누워 있다. 막도장은 주로 나무가 소재이다.
인장 소재로는 모과나무, 목백일홍이 단단하여 자획이 떨어져 나가지 않아 나무가 이용된다. 그다음으로는 인조목으로 불리는 플라스틱이 뒤를 이었고 귀족이나 호족들은 물소 뿔이나 코끼리 상아를 구해 인장을 새겼다. 무소의 뿔은 단단한 강질로 자획이 마모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상아보다도 값이 저렴하다. 반면에 상아는 화장실 가까운 곳에 보관하면 갈라지고 튀는 단점이 있다. 그러니 인장 소재를 잘 선택해야 할 것이다. 쇠붙이나 돌의 재료는 흔하다. 돌 가운데에서는 황옥, 청옥, 흑옥이 있는데 옥은 단단하여 제작비가 많이 들어간다. 서민이 부담하기에는 짐일 수가 있다. 그러나 근세 조선 시대 귀족들은 수입된 상아 인장을 소재로 선택했다.
우리나라 왕조사에 독자적인 옥새를 사용한 임금이 세 분 있다. 고려 시대 광종과 조선 시대 고종, 순종께서는 독자적인 국새를 제작하여 사용했다. 이는 대단한 용단이었고 자주적인 행보였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의 영향을 벗어나고자 하는 결단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사후이지만 오늘날 세 분의 왕을 우리는 감사하며 기억해둘 만하다.

  • 3, 4. 한국문인인장박물관 전시실 내부
소설가들의 인장

우리 소설가의 인장 가운데 한용환 선생의 인장이 사이즈 기준으로 보면 가장 크다. 어린아이 주먹만하다. 중국의 황석으로 누군가 여행 중에 맞춤으로 선물한 마스코트용을 필자에게 건네주었다. 원로 여류 소설가 송원희 선생님의 낙관은 화가 오수환 교수의 부친이신 서예가께서 각을 하셨다. 서체도 작가의 독특한 스타일의 방법으로 다른 사람이 모방을 할 수 없는 높은 수준의 작품이다. 정연희 소설가의 장서인은 회양목 고목의 뿌리를 예술적으로 살려서 달필과 필법이 조화를 이룬 명작으로, 대번에 정연희 선생의 고상한 아취를 느낄 수 있다. 또한 김주영 선생의 것도 중국의 이름 높은 공훈예술가의 작품이라고 생색내면서 건네준 인장이다.
소설가 박광서 선생의 낙관은 옥돌도 출중하지만 전서에 일가를 이룬 익숙한 솜씨로 품격이 높다. 소설가 이문구 선생의 음각 낙관은 글씨가 깊이 새겨져 음이 강해 양과 함께 사용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 인장인데, 한 벌을 기증해야 하는 아쉬움이 앞선 인장이다. 손영목 선생의 인장은 상아 소재인데, 서툰 것 같으면서도 익숙한 칼솜씨에서 그윽한 맛이 느껴진다. 그러나 상아 인장은 화장실 가까운 곳에 두면 암모니아의 영향으로 인장 몸피가 갈라지는 것이 상아의 취약점이다. 김태호 작가의 인장 경우 한 번에 흘려 파지 않고 한 자 한 자 정성을 다한 칼맛이 이채롭다. 가는 선이 날렵하여 기계가 아님을 강조한 솜씨이다.
최창학 소설가의 인장은 종로의 명인이 새긴 음양오행을 반영하였는데, 선과 각을 지나치게 흘린 까닭에 인기의 편중으로 아쉬운 인장이다. 오찬식 작가의 경우는 예총을 드나들던 서각가의 솜씨인데, 단순한 예서로 마지못해 새긴 억지 춘향의 몸짓이 아쉽다고나 할까. 박양호 소설가의 인장은 한글 이름을 새긴 것이다. 한글 도장의 경우, 전서체는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글로 낙관을 새기는 경우에는 훈민정음체라면 이는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새긴 이가 느끼지 못해 아쉽다. 이동하 선생의 인장은 전형적인 전통 서각가의 솜씨인데, 글씨가 경직되어 점잖기는 하지만 낭만적인 데가 부족하다고나 할까? 유재용 선생의 인장은 글씨가 너무나 호방하고 칼이 자유롭게 움직여서 입체적인 느낌이지만 적절한 공간 배열이 아쉽다. 이동희 선생의 인장도 이와 유사하다. 소설가들은 윤후명 작가의 인장처럼 자유로운 비상을 꿈꾸고 미지의 세계를 꿈꾸는 형상이 보기에도 좋을 듯하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처럼 말이다.
이러한 도장들은 인감이라기보다는 책이 출판되면 판권에 찍어 붙이는 실용적으로 쓰인 도장들의 집합체라 할 수 있으며, 시간이 지나면 하나하나가 문화유산이 된다. 세월이 흐르면서 없어지는 것이 많듯이 도장들도 사라져 가고 있지만, 자신을 인증하고 대신하는 신표인 도장의 의미를 다시 새겨 보았으면 한다.

5. 송원희, 정연희, 김주영, 박광서, 최창학, 박양호, 이동하, 이동희 순서로, 작가들의 인장